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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여행7

경희궁 (Gyeonghuigung Palace) [경희궁] 경희궁은 본래 인조의 아버지인 정원군의 집이었으나, 그 터에 왕기가 서려 있다는 말이 돌자 광해군이 이를 몰수해 궁궐을 지었습니다. 건립 당시에만, 1500칸에 이르는 대궐이었던 경희궁은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가장 철저하게 파괴됐습니다. 일사늑약(을사조약)이 강제 체결되고 경성중학교가 들어서면서 부터 많은 피해를 입었습니다. 경희궁은 서궐이라고도 불렸는데, 임진왜란으로 경복궁이 불탄 후 대원군이 중건하기 전까지는 동궐인 창덕궁과 창경궁이 법궁이 되었고, 서궐인 이곳 경희궁이 이궁으로 사용되었습니다. ✤ 흥화문 : 경희궁의 정문. 1932년 일제가 떼어가서 이토 히로부미를 위한 사당인 박문사의 정문으로 사용함. 광복 이후, 그 자리에 신라호텔이 세워지면서 그 정문으로 남아있었다가, 1988년 복원.. 2019. 12. 21.
종묘 (Jongmyo Shrine) [종묘] 조선시대 역대 왕과 왕비의 신주를 모시고 제사를 지내는 국가 최고의 사당. ‘좌묘우사’의 주례에 따라 경복궁 기준으로 왼쪽에 자리를 잡고 있음. 지금의 종묘는 임진왜란 때 소실되어 1608년에 재건됨. 정전의 신실 19칸에는 신주 49위가, 영녕전에는 신실 16칸에 34위가 모셔져있다. 왕위에서 쫓겨난 연산군과 광해군의 신주는 종묘에 묘시지 않음. 그러나 왕위에서 쫓겨났다가 숙종 때 명예를 회복한 단종의 신주는 영녕전에 모셔져있다. 종묘는 제사를 모시는 공간과 제사를 준비하는 공간으로 나뉘는데, 제사를 모시는 공간은 정전, 영녕전, 공신당, 칠사당이 있고, 제사를 준비하는 공간으로는 재궁, 향대청, 악공청, 전사청 등이 있다. 중국이나 베트남과 달리 한국의 종묘는 제례와 제례악을 모두 보존하고 .. 2019. 12. 20.
덕수궁(Deoksugung Palace) [덕수궁] 원래, 성종의 형인 월산대군의 저택이었음. 임진왜란시 선조의 임시 거처로 사용되다가 광해군이 1611년에 경운궁이라는 정식 궁호를 붙임. 그 후, 1897년 대한제국 출범과 함께 활발히 사용됨. ✤ 대한문 : 경운궁의 정문은 남쪽으로 난 인화문이었지만, 도로 건설과 환구단 건립 후, 대안문이 정문이 됨. 1906년 대한문으로 이름이 바뀜. ✤ 중화전 : 경운궁의 정전. 1902년 고종이 러시아공사관에서 경운궁으로 환어한 후, 5년 동안 즉조당을 정전으로 사용하다가 1902년에 중화전을 새로 지음. (답도에 용 두 마리, 봉황x) ✤ 즉조당 : 임진왜란 때 선조의 임시거처. 즉조당에는 고종이 손수 쓴 편액이 걸림. 석어당은 덕수궁 유일의 중층건물로 단청이 없음. 준명당은 황제가 업무를 보던 편전.. 2019. 12. 19.
창경궁 (Changgyeonggung Palace) [창경궁] 1483년 성종이 창덕궁 동쪽에 세운 궁궐입니다. 세종은 고려의 남경 이궁 터에 수강궁을 세웠는데, 성종이 창덕궁이 좁아져서 수강궁을 확장하면서 창경궁이라는 이름을 붙이게 되었습니다. 일본은 일제강점기에 1907년부터 창경궁 안에 동물원과 식물원을 설치하여 일반에 공개했으며, 1911년에는 이름마저 창경원으로 격하시켰습니다. 동물원은 없어졌으나, 식물원은 현재 남아있습니다. 1983년부터 복원사업이 시작되어 지금도 진행되고 있습니다. ✤ 홍화문 : 창경궁의 중심 부분이 동향이기에 홍화문도 동쪽에 세워짐. (홍화문의 금천교는 옥천교) ✤ 명정전 : 창경궁의 정전. 현존하는 궁궐의 정전 가운데 가장 오래된 건물. (국보 제 266호) ✤ 문정전 : 창경궁의 편전. 혼전으로 쓰인 경우도 있다. 17.. 2019. 12. 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