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몽글몽글한 소설을 읽었다. 6명의 작가가 할머니라는 주제로 엮은 책이다. 저마다 살아온 인생이 다 달라서 할머니의 삶도 다양하게 그려진다. 그렇지만, 한가지는 동일하다. 할머니의 삶에 대한 감사이자 감탄이 담긴 책이라는 것.
책 중간중간에 각 단편에 어울리는 삽화가 미니포스터처럼 담겨있는데 다 예쁘다. 조이스 진님의 작품이라는데, 다른 작품들도 궁금하다.
작가분들은 모두 요즘 한국문학에 핫하신 분들이다. 윤성희 작가의 '어제 꾼 꿈', 백수린 작가의 '흑설탕 캔디', 강화길 작가의 '선베드', 손보미 작가의 '위대한 유산', 최은미 작가의 '11월행', 손원평 작가의 '아리아드네 정원' 이 수록되었다.
오래전, 스스로 너무 늙었다고 느꼈지만 사실은 아직 새파랗게 젊던 시절에 할머니는 늙는다는 게 몸과 마음이 같은 속도로 퇴화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몸이 굳는 속도에 따라 욕망이나 갈망도 퇴화하는. 하지만 할머니는 이제 알았다. 퇴화하는 것은 육체뿐이라는 사실을. 그런 생각을 할 때면 어김없이 인간이 평생 지은 죄를 벌하기 위해 신이 인간을 늙게 만든 건 아닐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마음이 펄떡펄떡 뛰는 욕망으로 가득 차 있는데 육신이 따라주지 않는 것만큼 무서운 형벌이 또 있을까? 꼼짝도 못하는 육체에 수감되는 형벌이라니.
... ...
누구와 함께 있어도 낯선 섬에 홀로 표착한 것 같았던 할머니의 일생이나, 하루가 너무 길 때마다 차라리 빨리 죽여달라고 신에게 간구하지만, 죽음 이후를 막상 상상하면 어김없이 찾아오는 극심한 공포에 대해서 결코 말할 수 없을 것이듯. 하지만 어쩌겠는가? 우습게도 느닷없이 아무래도 좋다는 마음이 들었다. 예상치 못했던 일이 주는 즐거움. 계획이 어그러진 순간에만 찾아오는 특별한 기쁨. 다 잃은 것 같다고 생각하고 있으면 어느새 한여름의 유성처럼 떨어져 내리던 행복의 찰나들. 그리고 할머니는 일어나서 브뤼니에 씨와 함께 탑 위에 각설탕 하나를 더 쌓았다. 하나를 더. 또 하나를 더. 그러다 탑이 무너져 내릴 때까지. 각설탕들이 사방으로 흩어지고, 할머니와 브뤼니에 씨가 손뼉을 치며 웃음을 터뜨릴 때까지.
"흑설탕 캔디" 중 - 백수린
개인적으로 이 삽화가 제일 마음에 든다. 책 표지에 있는 삽화이다. 잔잔히 할머니들의 삶을 들여다보며, 자연스레 우리 할머니가 생각난다. 똥강아지를 제일로 사랑해주시던 할머니가 보고싶어지는 책. 나도 예쁘게 늙는 할머니가 되야지 싶다. 할머니의 소녀같은 마음을 떠올리게 해주는 책으로 추천하고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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