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수궁]
원래, 성종의 형인 월산대군의 저택이었음.
임진왜란시 선조의 임시 거처로 사용되다가 광해군이 1611년에 경운궁이라는 정식 궁호를 붙임.
그 후, 1897년 대한제국 출범과 함께 활발히 사용됨.
✤ 대한문 : 경운궁의 정문은 남쪽으로 난 인화문이었지만, 도로 건설과 환구단 건립 후, 대안문이 정문이 됨. 1906년 대한문으로 이름이 바뀜.
✤ 중화전 : 경운궁의 정전. 1902년 고종이 러시아공사관에서 경운궁으로 환어한 후, 5년 동안 즉조당을 정전으로 사용하다가 1902년에 중화전을 새로 지음. (답도에 용 두 마리, 봉황x)
✤ 즉조당 : 임진왜란 때 선조의 임시거처. 즉조당에는 고종이 손수 쓴 편액이 걸림.
석어당은 덕수궁 유일의 중층건물로 단청이 없음. 준명당은 황제가 업무를 보던 편전.
✤ 함녕전과 덕홍전 : 함녕전은 왕의 침전. 고종이 승하한 곳. 덕홍전은 명성황후의 혼전인 경효전이 위치했던 곳으로 고위 관료나 외교 사절을 맞이하는 접견실로 사용되었음.
✤ 정관헌 : 휴식용 건물로서, 러시아 간축가 사바친이 한식과 양식을 절충해 설계함. 고종황제가 이 곳에서 거피를 마시며 외교사절들과 연회를 즐김.
✤ 석조전 : 고종황제가 침전 및 편전으로 사용하기 위해 지은 서양식 석조건물. 대한제국 근대화를 위한 정책의 일환으로 석조전은 신고전주의 건축양식으로 지어졌다.
✤ 궐내각사 터와 환구단 : 궐내각사는 덕수궁 동쪽 담장 안쪽과 서울 광장일부에 위치했으나 태평로 건설로 사라짐. 환구단은 현 조선호텔 자리인 남별궁 터에 건축되었다. 남별궁에는 태종의 둘째 공주인 경정공주가 거주했다가 중국 사신의 거처로 사용되었고, 1897년 고종이 황위에 오름을 하늘에 고하기 위해 환구단이 건축되었다.
✤ 선원전 터 : 경운궁은 예원학교 덕수초교 옛 경기여고 터를 포함한 넓은 영역이었으나 1919년에 고종이 승하한 후, 궁역이 해체되면서 오늘의 덕수궁 영역으로 축소됨.
1900년 완성된 선원전에는 7위의 어진이 있었으나(빈전, 혼전으로도 사용), 일제는 고종황제 승하 후, 어진을 돌볼 사람이 없다는 이유로 선원전을 헐었고, 그 부지를 조선은행, 식산은행, 경성일보사 등에 매각했다. 현재 복원이 추진 중이다.
(빈전: 장례까지 임금 또는 왕비의 관을 모셔두는 전각, 혼전은 임금이나 왕비의 장사를 마치고 종묘에 입향할 때까지 신위를 모셔두는 곳)
✤ 중명전 : 러시아 건축가 사바친이 설계했으며, 경운궁에 지어진 최초의 서양식 건물. 처음에는 수옥헌으로 불리며, 처음에 수옥헌으로 불리며 황실도서관으로 지어졌으나 후에 연회장이나 외국 사절 접견소로도 이용. 1905년 을사늑약이 체결된 곳이며, 1907년 헤이그 만국평화회의 특사 파견이 이루진 곳이다.
Tip, 덕수궁도 오후 9시까지 개장하고 8시까지 입장마감인 고궁입니다. 덕수궁 내부에는 석조전에 대한제국 역사관과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이 있어서 근대 역사 공부와 미술 감상까지 할 수 있답니다. 덕수궁 정문, 대한문 앞에서는 수문장 교대의식도 있어서 볼 거리가 많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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